반응 체계
구체적 사건이나 눈에 보이는 물질적 변화를 제외하면 (내가 보기에는 다른 것에는) 인간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면 그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실존은 살아남는 것으로 인증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모습에서 소위 '합리적 인간'이라는 이기적인 전제를 유출해 놓은 것이지 싶다. 그리고 이 묶음이 집단성을 띠게 되면 당리당략이라는 범주까지 확장되고 견제를 넘어 충돌에 이르는, 이제부터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거리가 등장한다.
그 안에서 사회화의 결과로서 적응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반응을 보이면 된다. 물론 이것은 정서적인 보상도 포함이 되는 영역을 의미한다.
자극이 없는 반응이란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성립조차 하기 어려운 가정이지만 최근에 게을러진 (원래도 그랬지만)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일종의 상상 같은 묘한 의식적 흐름의 정신적 활동이 왕성해지는 듯한 기운을 받곤 한다.
노령으로 접어드는 초기 적응 상태니 황혼기의 회상이니 후회를 구제하기 위한 심리적 기제니 기타 등등하면서 스스로 여러 이름을 붙인다.
가만히 앉아서 감히 천리를 내다보는 착각은 전혀 어불성설이지만 전형적인 나이 든 자의 고집과는 약간은 다른 어떤 류의 자각이나 성찰이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과장이 될까?
그래 봐야 개.취.를 벗어나기 힘든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지만 그래도 범람하는 사회관계망의 알림 공지에서 독특한 개성의 영역을 확보한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허허.
P.S. 실제로 필요한 것은 구체성인데 동년배의 아주 잔잔한 인상의 여류 인사가 How보다는 Why나 What에 비중을 둔다는 이야기에 격려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