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유지태가 순진하게 읊었던 대사를 신파조로 부흥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바로바로 냉수 먹고 속 차리라고 훈수를 두고 싶은 심정이다. 일종의 Growing Pain 그 이상의 이미를 두고 싶지 않다는 의견 정도이다.
그럼에도 약간의 쐬한 기분이 이 문장에 덮여지는 순간이 있음도 부정하기 힘들다.
최근에 몇 차례 진한 꿈을 꾸고 나서 그 여파로 발생하는 일인데, 역시 혈육과 관계되는 일이다.
이미 꿈에 대한 어떤 감흥과 여파를 완전 백지화 한 지가 오래되어서 사정권에는 충분히 벗어나 있다. 다만 그것과 연동되어서 의식 속에서 등장하는 생각의 편린들이 어떤 단단한 하나의 관점으로 뭉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그렇게 어여삐 여겼던 딸내미를 단절 상태로 치달은 작금의 현황에 투영하니 스스로에게 한 번 확인하는 정도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의 변주를 울리는 증상 같은데,
퇴색되는 시간의 힘에 변색되는 현실의 상황에서, 감히 거부하지는 못하지만 아주 가끔씩 작은 항거를 꿈꾼다고나 할까?
아무런 변화도 지나고 나면 남지를 않는다. 그러니 결과만을 놓고 보면 그 누구도 감지할 수 없는 무형의 영역에 잠가지고 말 것이다. 다만 지나가는 과정에서 업과 다운의 흔적을 남기는 정도라고 여긴다.
어쩌면 지금 글을 쓰는 나조차도 지나고 나면 매가 도대체 뭔 말을 한 것이지? 의아해 할 수도 있는 현실이 앞에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